JUSTAO/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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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무역을 통해 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WIN-WIN)을 만들기 위해 대안적 운동으로 개인들의 참여/ 동참/ 협력/ 정보의 공유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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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4
    공권력과 싸움
  2. 2008.05.16
    G8잡는 고양이 페스티발 전단지
  3. 2008.03.07
    신자유주의 하의 사회운동과 에스페란토

계속되는 촛불의 함성이

찜통 더위 속에서도

한 줄기 빗망울처럼 거리를 채우고 있다.

더러는 힘을 상실했다는 평도 나오지만

12일 비와 오는 가운데서도

촛불의 외침은 밤새 계속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돕과 켄짱이 있어

그들과 그리고 몇 명이 이 번 G8투쟁으로 구속된 일본 활동가 석방을 위한

피케팅을 연대의 표시로 했다.   이 후 잠시동안이나마

일본의 데모의 모습과 공권력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일본 역시 국내 문제에도 많은 데모가 있지만

G8과 같은 상황의 조직적인 대규모 데모와 투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준비하는 일본 활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은

아마 국내 활동가들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보다 치열한 투쟁과 그것을 통한 승리가 없었기에

일본 운동사에서 나오는 전공투 투쟁이후 계속되는 보수화 물결로 인해

일본은  경찰국가가 된 것이나  만찮가지이다.

현재 한국내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 투쟁을 보면 어쩌면 일본의 활동가들은

너무나 부러워 할 지 모른다.   


일본은 영장 없이 최장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심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제외한 일체의 면회 및 접견이 금지 되어있다.  완전한 고립 속에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말살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도 집회 시위에 대한 법률(집시법)을 통해 집회를 통제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국내의 집시법과 비슷하지만 적용에 있어 더 엄격히 강제되고 있기에 집회 추최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위축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저한 폴리스 라인은 경찰의 가이드 라인 한 차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에 대한 위법을 잡기위한 사진채증과 비디오 채증은 가공할 만하다.


이 번 G8 투쟁때에도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여러가지 직접행동을 하자고 제안 하면 일본 활동가들에게 막혀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중에는 고생하는 활동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한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방송차량에 신고되지 않은 인원이 초과되었다고  행진 중에 경찰력이 들어와서 방송차량과 모든 도구 심지어 사람들까지 잡아가는 상황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시위와 행동을 할 때에는 어는정도 세의  양과 질을 통해 양상도 달라지는데

대규모 시위의 경우 경찰 쪽도 그의 상응하는 인원을 동원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언제나 경찰력이 수적으로 위세이기에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속되는 투쟁과 시위가 잡혀 있는 상화에서 만일의 불상사가 생기면 향 후 있을 시위나 행사가 불허된다.   그것을 가지고 일본 경찰들을 언제나  불법을 운운하며 장난을 치나 보다.


 한국에서도 촛불집회에서 평화적인 집회는 보장하지만 불법은 엄단하겠다고 하지만 공권력과의 싸움은 언제나 법의 테투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불법이다.   그것을 나누는 잣대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을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다.  투쟁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다.  

광주 항쟁을 그들은 북에서 사주를 받은 불온세력들이 일으키는 폭동이라고 계엄군까지 동원하여 무참히 짖밟아 놓았다.  당시에 불법을 저질은  광주 시민들은 철저히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 앞에서 개인의 인권은 유린 당했다.  고귀하고 순결한 피로써 투쟁하였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것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익혔다. 그것에  굴복하게  앞으로 참 암담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번 빼앗긴 자유와 권리는 그것을 되찿으려면 얼마나 어려운지도 그리고 한 번 양보하고 내주기 시작하면, 권력자들은 결국 우리의 모든 자유를 야금야금 빼앗을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타격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기에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투쟁한다.

민선대통령 시절에도 김영삼타도을 외쳤고 김대중 정권때나 노무현 정권때도 잘못하면 타도를 외쳤던 국민들이다. 하물며 자기 독선으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정권은 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공권력과 싸움은 개인의 자유의 투쟁이며 인권투쟁이다.   경찰의 공권력의 기제장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지금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국민을 얏보거나 웃습게 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국민이 승리한다것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고 있다.


현재 정부는 많이 했으니 그만하라고 한다.  

내는 그만 못하겠다.


이 정권이 끝나고 다음 정권 그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박정희가 베트남에 한 월남 파병과 노무현 정권 때 자이툰 파병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왜 자국의 군대가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되어  그 나라 민중들에게 뼈아픔 상처를 주는것에 대해 정부는 언제가는 사죄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한미 FTA 협상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도 잘못되었다고 국민들에게 무릎꿇고 사죄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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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NO, G8! 모임("G8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올해 일본에서 열리는 G8(일본 도야코 7.7~7.9)에 반대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여 다양한 만남과 투쟁을 전개해나가려 합니다. 또한,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회담의 문제를 알리고 함께 싸울 힘을 모으려 합니다.

오는 6월 6-7일 이틀간 "쥐8잡는 고양이 페스티벌"을 통해 G8의 만행을 알리는 흥겨운 투쟁의 장을 마련하고 일본 방문할 활동가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G8은 아시다시피 세계 8대 부자나라들의 모임입니다.

미국, 독일, 캐나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정상들이 매년 만나서 일종의 친목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자신들이 세계 정부인 양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논의들은 언제나 자국의 소수 부자들을 위해 어떻게 가난한 나라들을 착취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이니 비교우위니 하지만 화려한 쇼와 현란한 말들 뒤로 자기네 무역장벽은 굳건히 세워둔 채 가난한 나라들의 무역장벽 해체, 공공서비스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IMF, 월드뱅크, WTO 등의 많은 국제기구와 FTA, GATT 등 수많은 협약들로 자신들의 악행을 공고히 해나가고 있으며, 다국적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고통은 당연히 전세계의 민중들이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노동자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 빚만 불어나는 농부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빈부격차….

따라서, G8은 친목모임이라기 보다는 범죄집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행태를 좌시할 수 없는 전세계의 수많은 농민, 노동자, 빈민, 활동가들이 이 회의를 무산시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들의 회의장이 반대여론을 피해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지정되는 이유가 괜히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일본정부는 넓은 호수 뒤 언덕 꼭대기에 있는 토야코 윈저호텔을 회담장소로 정해, 시위대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후쿠다 총리로부터 초청을 받아

한국 대통령 최초로 G8 정상회담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한국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에 "G8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8마리의 쥐들을 잡기 위해 회의장 주변에서 시위도 하고, 이 때를 기회로 삼아 연대와 우정의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쟁, 민주주의, 무역, 보건, 아프리카, 환경, 식량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까발리고 더 이상 ‘지구를 끝장낼’ 지도 모르는 이 위험천만한 회담을 끝장내야 할 것입니다.

G8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6월 6일~7일, G8 반대의 움직임에 불을 지필 수 있도록

"쥐8을 때려잡는 고양이 페스티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진보넷 팀블로그 http://blog.jinbo.net/noG8

일시: 2008년 6월 6일-7일 오후 5시 (금요일, 토요일 이틀간 열립니다)

장소: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 (오는 길 http://haja.or.kr 수도권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4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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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하의 사회운동과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무엇보다도 「일민족․ 이언어(一民族․二言語)」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자국어를, 나라 밖에서는 국제어 “Esperanto"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운동은 개방사회와 국제간의 우애와 정의를 요구했고, 약소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요구했으며 지배, 강압, 침탈을 배제했고 세계사상 가장 죄과 많은 강대국의 언어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성을 띤 언어사용을 실천해 왔고 국제생활의 복잡화에 따른 언어의 혼란에서 정화(淨化)의 길을 여는데 진력하여 왔다.1)

『지금 자기의 운명을 깨달은 새로운 인류의 최초 사업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곧 만인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언어 채택이라는 과제이다. 그것은 한 손은 내밀면 다른 손이 그 손을 찾아서 쥐는 얼의 악수이다. 그것은 그들의 공동우애이며 공동 작업이다. 이 사업은 전체적으로 생겨나려는 열망으로 크고 새로운 단체적 생활본능에서 형성되는 자발적 창조이다.(....)


  서로 껴안아라. 몇 천만의 사람들이여!

  몇 천만의 사람들이여, 껴안아라.

  이 전 세계에 키스를! 형제들이여!』2)


 왜 에스페란토가 평화의 언어인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 언어적 불평등을 느끼지 않으며 산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 제국주의의 횡포는 야만적인 포식자로서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는 언제나 영어 중심주의가 자라잡고 있다. 거리에서 미제 타도를 외치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토플, 토익이나 영어회화를 공부하여야 하고 심지어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속의 언어적 굴레에서 벗어나서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점점 영어가 인간능력의 절대척도, 절대언어로 되어가는 문화적 상황속에 또아리를 틀고 올라오는 ‘영어 공용화론’은 대중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사회운동활동을 하는데 대세인 영어로 하면 됐지 시간도 없는데 왜 에스페란토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에스페란토’ 소통의 도구로 좋긴 좋은데 너무 현실을 무시한 유토피아적인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하여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현실과 타협하기 위하여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운동을 이야기 하고 이상을 말하곤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언어문제는 민족주의 면과 보수적인 방식의 몇 가지 틀 속에서 진행되어 왔기에 사회운동 내에서의 언어문제 특히 공통어문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많은 단체들과의 국제적인 연대 활동에서나 회의, 세미나에서 당연히 영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통역은 영어와 자국어 하나로 되어있다. 어떤 경우에는 영어로만 이루어진 국제회의도 있으며 그것을 대단한 권위인양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어떤 국제회의나 토론에 비영어권 사용자들이 있다면 그것을 위한 배려로서 당연히 그 민족어의 통역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가장 많은 핑계가 예산이 부족해서 불가능 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가한 국제회의나 토론을 보면 비영어권 토론자의 경우 발제문을 보고 영어로 쓰여진 것을 읽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러기에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깊숙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특히 심한 경우에는 전혀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적인 행사에 중심인물로 자라잡고 있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영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며 영어의 사용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조차도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여 지고 있을 때,  에스페란토 운동이 프랑스어를 반대하자는 운동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에스페란토에는 그것과 비견될 수 없는 대안적이고 잠재적인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비영어 사용자들,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민족어의 사멸, - 쿠르드어, 아프리칸스어, 카탈루니아어 등등) 오늘날 지구화는 전 세계 사람들을 디아스포라 상황 속에서 국제적인 난민, 국제테러, 국제혼, 다국적기업, 이주, 관광, 탈주민, 국제간 회의, 대륙을 넘는 전쟁과 파병 그리고 인터넷 등등에 의해 나날이 빠르게 조성되고 있다.  이 상황은 역사 속에서 다르게 형성되어온 성별, 인종, 민족, 피부색, 문화 등의 차이를 더욱 심화, 융합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 충돌할 수 있다. 과거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어가 공용어로 강제되는 상황과는 다르게, 생존을 위한 강제가 가중되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더욱 더 영어가 개인과 사회에 다양성을 상실한 채 한 방향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민중들에게는 언어문제는 도태와 성공의 갈림길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언어권력의 힘 앞에서 개인의 선택은 너무나 좁다. 그 대안의 하나의 방편을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동안 국내운동에 머물던 다양한 운동들이 세계운동들과 연대와 소통이 되면서 왜 영어로 우리가 바라는 대안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해야 할 때이다.  그렇기에 대안사회를 고민하는 운동은 언어문제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라는 파고를 넘기 위해서 우리는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위한 연대와 소통- 활동을 정말 영어로만 해야 할까?     


  한국사회에서 영어는 중요하다.  공부하여야 하며 극복하여야할 자기 수련 과정이다.  하지만  계급적 상승이 아닌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어가 일반인들과 같이 사고된다면  언어적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릴지도 모른다. 특히 평화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나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언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한 번쯤 사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운동에  ‘공통어 문제’ 제안을 통해 영어의 횡포 속에서 좀 더 대안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를 이야기 하려 하며,  다른 하나는 과연 에스페란토가 사회운동과 어떻게 활용, 소통, 접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한다.


  아래 글은 에스페란티스토인 남희정님의 직접 경험한 평화의 언어 체험담이다: 


지난 여름 토다 키요시와 에스페란토


 내가 에스페란토를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였다.

대학시절 뇌리에 깊숙이 박히도록 충격을 준 책, '환경정의를 위하여'의 저자 토다 키요시를 오사카에서 만났다. 그와의 대화중에 그가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를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에스페란토에 대해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환경정의를 위하여'의 일본어판에는 원래 에스페란토로 쓰여진 서문이 있다. 아쉽게도 한국어판에는 실려 있지 않다.

토다 키요시가 말한 에스페란토의 장점은 첫째, 특정 지배국가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민족과 민족이, 국가와 국가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민중과 민중이 만나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이다. 국제적(영어의 international)이 아니라 민제적(에스페란토의 interpopla, 영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 언어라는 것이다.


둘째, 매우 훌륭한 매개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어를 바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매개어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경우 에스페란토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각 국가들이 모두 자국의 언어를 공식회의에서 고집하고 있어 통역이나 번역에 드는 비용이 매우 부담스럽고, 번거롭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유럽의회 의원들 중 약 18%정도가 에스페란토의 공용화에 찬성 하고 있다고 한다.


셋째는 감성적 언어라는 것이다.


인공어이기 때문에 생길수도 있는 감정표현의 한계점이 거의 없고 오히려 언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보다 더 정확하고 풍성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언어에 비해 배우기가 쉬운 점이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자멘호프라는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어이므로, 자연어에서 흔히 생기는 불규칙 변화나 관용구, 복잡한 문법이나 문장구조가 없다. 철저히 계획된 규칙과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이므로 매우 배우기가 쉽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고정된 언어라 볼 수는 없다. 조어법의 특성상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들을 탄생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대부분이 매우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


 근래 모 신문에서 에스페란토가 고유의 민족과 문화를 가지지 못한 인공어였기 때문에 실패 했다는 글이 실렸었다. 혹자는 과연 에스페란토가 언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에스페란토가 원전인 수많은 시와 소설들, 매달 발행되는 정기 간행물들,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세익스피어의 작품과 성경, 근대 한국단편소설집, 새롭게 발표되는 다양한 에스페란토 음악들, 또 수많은 에스페란티스토 가정들(에스페란티스토 가정에서는 일상적으로 에스페란토가 사용되고 이들 사이에 태어난 2세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에스페란티스토가 된다.) 을 본다면 이런 의문들은 아마도 금새 해결될 것이다.


 중국, 바티칸, 폴란드, 오스트리아, 쿠바 등 11개 국가에서 단파 및 위성 방송을 통하여 매일 수차례 에스페란토 국제 방송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성서뿐 아니라 논어와 코란, 햄릿과 같은 세익스피어 작품, 죄와 벌, 데카메론, 돈키호테, 파우스트, 설국, 삼국지 등 동서고금의 작품들이 에스페란토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원작 소설과 시의 창작 활동도 활발하다.


 매년 열리는 다양한 형태의 에스페란토 회합이나, 모임 역시 모두 에스페란토로만 진행되는데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특정 민족어로 대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가 더욱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 누구나 주눅이 드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위축감 없이, 에스페란토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언어이기 때문에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회운동과 공통어 에스페란토는 접목이 가능한가?


  위에 언급한 글을 쓴 남희정님의 경우 일본의 환경, 평화운동가인 토다 기요시의 만남을 통하여 에스페란토에 대한 만남이 시작 되었다. 일본의 SAT(Sennacieca Asocio Tutmonda, 세계 무국적자, 무민족자 협회) 회원인 Viola(비올라)님의 경우 살해당한 일본의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의 책를 통하여 에스페란티스토가 되어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의 길거리 평화행동을 함께하는 CGA의 Paz님의 경우 독학으로 에스페란토를 두 달 동안 공부 한 후 일본의 활동가인 Daisin과 이메일로 친구가 되어서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또한 직접 3개월 간 외국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을 만나는 에스페란토 세계여행을 체험한 후 지금은 에스페란토의 실용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에스페란토를 통한 메일 교환과 만남은 수도 없이 에스페란토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한 개인 블로그를 통한 직접 소통의 가능성- 다중네트워크의 조정환 선생의 경우 에스페란토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글을 소통의 도구로 삼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러한 직접만남, 직접소통은 에스페란토가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을 뛰어넘는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에스페란토 평화연대에서는  “ La Solidareco"를 제작해 국내 사회운동 단체들의 활동과 행동들을 싣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국가 보안법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외국인 노동자 실태 및 운동, 이라크 반전운동, 국내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등.  현재까지  “ La Solidareco"는  그동안 한국의 상황이나 소식들을 잘 알지 못하던 외국의 에스페란티스토들과 직접 소통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자신의 나라에서 발생하는 사회적문제를 직접 기사화하여 보내오고 있으며, 또한 기사화된 국내의 작은 운동들이 외국의 에스페란토 독자들에 의해서 자국의 민족어로 종종 번역되어 소개 되곤 한다.

에스페란토와의 사회운동과의 접목은 개인적으로 사회운동에 관심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에스페란티스토)들이 직접 연대하거나 개인/단체의 활동을 국제적인 시각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대안적인 무기이다.  하지만 국내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적은 조건과 또한 대다수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이 언어의 잠재력을 사회적 운동으로 전환시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사회운동 단체나 개인들이 에스페란토를 익혀서 활용을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평화운동단체들과 작은 연대를 해나가면서 에스페란토와 관련하여 많은 ‘워크샆’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에스페란토를 익혀서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에서는 에스페란토 관련 학습 모임이 4개가 가동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초급자를 위한 강습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대다수가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에스페란토는 참여와 소통이다. 익히면서 소통이 가능하기에 적은 시간에 에스페란토를 익혀서 개인의 블로그를 만들어 글쓰기가 가능하다. 인터넷 공간에 에스페란토로 만들어진 블로그들은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는 소통의 공간이기에 언제든지 사용자들과 평등한 관계에서 친구로 만날 수 있으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종종 에스페란토 하는 인구가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이 많은데 어디나 양으로 승부하려는, 통계화하려는 상황에서 반대로 전 세계 영어 사용자의 정확한 통계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에스페란토는 국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다중의 네트워크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에스페란티스토와 네트워크 할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직접소통을 만들 수 있으며 친구로서 우정을 나눌 수 있기에 자신과 관심과 성향의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생태, 환경, 여성, 노동, 동성애 등등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에스페란토를의 활용을 권장하고 싶다.  자신들의 국내의 운동을 외국에 소개하고 그들을 우리의 동지로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우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에스페란토를 만들라고 권고 하고 싶다. 또한    개인들의 블로그에 에스페란토 글쓰기를 실행하여 소통의 도구로 삼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집회나 행동이 있을 때 영어로 써서 외국의 홍보를 바란다면 그것과 하나 더 에스페란토를 쓴 자신들의 주장을 적어 전 세계 알린다면 영어 외에 소통의 도구를 하나 더 얻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 우리는 국제연대의 부분이 중요하다. 국제연대, 국제주의 안에 민족주의를 넘어야 진정한 국제연대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일국적 상황이 아닌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점점 절박한 시대로의 이행이다. 사회운동 단체들과 개인들에게 네트워크를 이야기하지만 무엇으로 개인이 전 세계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할 것인가?  이러한 시점에 공통어에 대한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에 무엇보다도 먼저 국내의 사회운동 단체에서 에스페란토라는 공통어로서 전 세계 사회단체에 물음을 던져 (영어로 모든것을 독점하려는 거대 단체나 조직에) 국제연대를 선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     

왜  활동가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하나?

  지금 신자유주의라는 물결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일국의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고 있다.  불량하고 부정한, 야만의 얼굴을 한, 필연적으로 약자들의 언어와 문화를 짓밟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는, 거대 국가의 자본의 횡포는 언제나 언어적 강요를 동반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국의 식민지 국가에 강제된 제국주의 언어의 교육은 비단 일본어만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침략으로 자국의 민족어를 잃어버린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과거의 식민지 쟁탈전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제국의 횡포의 담론에, 개인의 계급적 상승을 위한 인터네셔날로 가는 코스모폴리탄 국민으로서의 영어라는 민족어 앞에 전 세계 국가와 민중들은 언어로서 이루어지는 평등성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듯이  누구나 쉽게 우리가 아닌 타민족을 만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다.  무엇으로 우리는 그들을 만날 것인가?  자본으로 무장된 타민족의 착취를 동반한 폭력을 수행하는 제국주의 언어로 만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야할 땅을 황폐화하고 파괴함은 물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마저 파괴 시키고 있는  평등성을 상실한 민족어들의 횡포에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서 그들과 만나야 한다. 

 거대한 자본과 그것을 형성한 권력들과 부조리한 것들을 저지시키려는 작은 행동의 몸짓들은 우리들의 희망이다.  평화를 고민하고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에스페란토야말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영어권의 사용자인 외국인을 만나서  헤어지면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가 있는데 당신도 배워서 한 쪽이 느끼는 언어적 불평등에서 떠나 다음번에는 평등하게 이야기 하자고  당당하게 한 번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평화운동을 하면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문화의 다양성과 존중을 이야기 하고 민족어의 보존, 심지어 사라져가는 지방어(사투리)의 보존을 이야기하면서 국가 간 소통에는 영어로 이야기하자고 한다. 일국의 민족어, 아니 영어가 보편화 되었다고 세계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자는 이야기는 전 세계 비영어권 사용자들에게는 이러한 언어적 불평등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들하고의 소통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평화 활동가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스페란토의 태생적 환경 역시 평화의 언어로서 만들어졌기에 전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언어로 소통하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전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이  평화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에스페란토를 하면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는 것을 금방 알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똑같은 고민 속에서 에스페란토를 공부하였기에 거기에서 느끼는 느낌은 형제애 같은 것이다.


나는 에스페란토가 배우기 쉽다하니까 누구나 아무런 목적과 의식이 없이 배워서 여행을 가서 쉽게 에스페란티스토들과 친구가 되라고 배우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언어적 측면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는 우리만 알면서, 우리끼리만 즐기겠다는 생각이 에스페란토를 하는 사람사이에서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페란토티스토 중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생각의 공유 속에 평화 활동가들이 많아져서 에스페란토를 통한 평화운동이 전 세계 민중들에게 희망의 언어, 평화의 언어로 다가갔으면 한다.


세계 곳곳의 민중들의 정당하고 올바른 목소리가 모아지고, 연대를 이루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쌓이고, 곧 그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물줄기가 될 것임을 믿는다.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침략의 구조를 파괴하는 민중의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면서 해방의 인터내셔널리즘, 즉 intrepopola lingvo (민제적 언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매개체로서 에스페란토의 역할을 또한 기대한다. 지배자의 언어와 문화가 아닌, 강자의 것도 약자의 것도 아닌 제 3의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말이다. 


에스페란토에는 그러한 내적인 힘이 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라는 관점에 갇힌 채, 보지 못하는  전 세계 민중을 향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평등한 가치의 언어,  에스페란토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독점적으로 점유할 수 없는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로서의 가치적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 민중연대를 위한 도구로서 가능하며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또 하나의 소통의 도구로서 에스페란토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본다. 



1) 김삼수 『한국에스페란토운동사』숙명여자대학출판부, p33

2) 伊東三郞『ザメホフ』p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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