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AO/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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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무역을 통해 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WIN-WIN)을 만들기 위해 대안적 운동으로 개인들의 참여/ 동참/ 협력/ 정보의 공유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함.
6무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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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4
    공권력과 싸움
  2. 2008.07.02
    촛불이 왜 이길까?
  3. 2008.06.26
    광화문 소나타
  4. 2008.06.03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

계속되는 촛불의 함성이

찜통 더위 속에서도

한 줄기 빗망울처럼 거리를 채우고 있다.

더러는 힘을 상실했다는 평도 나오지만

12일 비와 오는 가운데서도

촛불의 외침은 밤새 계속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돕과 켄짱이 있어

그들과 그리고 몇 명이 이 번 G8투쟁으로 구속된 일본 활동가 석방을 위한

피케팅을 연대의 표시로 했다.   이 후 잠시동안이나마

일본의 데모의 모습과 공권력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일본 역시 국내 문제에도 많은 데모가 있지만

G8과 같은 상황의 조직적인 대규모 데모와 투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준비하는 일본 활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은

아마 국내 활동가들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보다 치열한 투쟁과 그것을 통한 승리가 없었기에

일본 운동사에서 나오는 전공투 투쟁이후 계속되는 보수화 물결로 인해

일본은  경찰국가가 된 것이나  만찮가지이다.

현재 한국내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 투쟁을 보면 어쩌면 일본의 활동가들은

너무나 부러워 할 지 모른다.   


일본은 영장 없이 최장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심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제외한 일체의 면회 및 접견이 금지 되어있다.  완전한 고립 속에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말살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도 집회 시위에 대한 법률(집시법)을 통해 집회를 통제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국내의 집시법과 비슷하지만 적용에 있어 더 엄격히 강제되고 있기에 집회 추최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위축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저한 폴리스 라인은 경찰의 가이드 라인 한 차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에 대한 위법을 잡기위한 사진채증과 비디오 채증은 가공할 만하다.


이 번 G8 투쟁때에도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여러가지 직접행동을 하자고 제안 하면 일본 활동가들에게 막혀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중에는 고생하는 활동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한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방송차량에 신고되지 않은 인원이 초과되었다고  행진 중에 경찰력이 들어와서 방송차량과 모든 도구 심지어 사람들까지 잡아가는 상황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시위와 행동을 할 때에는 어는정도 세의  양과 질을 통해 양상도 달라지는데

대규모 시위의 경우 경찰 쪽도 그의 상응하는 인원을 동원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언제나 경찰력이 수적으로 위세이기에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속되는 투쟁과 시위가 잡혀 있는 상화에서 만일의 불상사가 생기면 향 후 있을 시위나 행사가 불허된다.   그것을 가지고 일본 경찰들을 언제나  불법을 운운하며 장난을 치나 보다.


 한국에서도 촛불집회에서 평화적인 집회는 보장하지만 불법은 엄단하겠다고 하지만 공권력과의 싸움은 언제나 법의 테투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불법이다.   그것을 나누는 잣대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을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다.  투쟁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다.  

광주 항쟁을 그들은 북에서 사주를 받은 불온세력들이 일으키는 폭동이라고 계엄군까지 동원하여 무참히 짖밟아 놓았다.  당시에 불법을 저질은  광주 시민들은 철저히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 앞에서 개인의 인권은 유린 당했다.  고귀하고 순결한 피로써 투쟁하였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것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익혔다. 그것에  굴복하게  앞으로 참 암담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번 빼앗긴 자유와 권리는 그것을 되찿으려면 얼마나 어려운지도 그리고 한 번 양보하고 내주기 시작하면, 권력자들은 결국 우리의 모든 자유를 야금야금 빼앗을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타격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기에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투쟁한다.

민선대통령 시절에도 김영삼타도을 외쳤고 김대중 정권때나 노무현 정권때도 잘못하면 타도를 외쳤던 국민들이다. 하물며 자기 독선으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정권은 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공권력과 싸움은 개인의 자유의 투쟁이며 인권투쟁이다.   경찰의 공권력의 기제장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지금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국민을 얏보거나 웃습게 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국민이 승리한다것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고 있다.


현재 정부는 많이 했으니 그만하라고 한다.  

내는 그만 못하겠다.


이 정권이 끝나고 다음 정권 그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박정희가 베트남에 한 월남 파병과 노무현 정권 때 자이툰 파병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왜 자국의 군대가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되어  그 나라 민중들에게 뼈아픔 상처를 주는것에 대해 정부는 언제가는 사죄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한미 FTA 협상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도 잘못되었다고 국민들에게 무릎꿇고 사죄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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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왜 이길까?


꺼져가는 촛불의 물결이 천주교 사제단의 미사집회로 다시금 시청광장을 수놓았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60여 일간의 촛불집회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촛불중독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나 역시 여기에 속하다 보다.

집회가 가지않는 날은 아프리카티브를 커놓고 오늘의 상황을 체크하며 분노한다.

어차피 집에 있으나 집회에 참석하나 잠을 못자는 것은 매한가지이기에 마음이라도 편하려고 촛불로 발길을 옮긴다.  개인의 일상의 삶을 바꿔놓은 촛불정국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재미있다. 

시민들은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성을 안다.  그들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하지만 시민들이 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를 국가권력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권력의 폭력성을 경험해 왔고 싸워왔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싸우지 않았는가?  아무리 MB가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의 탄핵사건 역시 이건 아니다는 판단으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는 아닌 것에 대해 어떠한 폭력으로 누른다 해도 납득할 만한 자기 긍정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것 이다. 그렇기에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단체나 조직들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창조적 행동에 뒤질 수밖에 없었고 이끌수도 없다. 물이 없으면 물을 구해오고, 인터넷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자고 제안하면 다음 날 곧바로 들고 나오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시위도구들이 등장하면서 거리의 시위는 즐기며서 권력에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와 권위가 옛날 권위주의 정권 때 만큼 사람들한테 받아들이지 않는 정서가 깔린지는 벌써 오래전에 이기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나 보았던 골통같은 오만이 시민들을 더욱 열받게 만들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 초기 독재타도, 명박퇴진이라는 구호가 10대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한 마디로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껌딱지처럼, 특정 연애인 안티모임에서 행동하듯이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한 마디로 “니가 뭔데”이다. “대통령이면 다냐” 이런 것을 보고 있자면 자연히 신이난다. 촛불중독에 안 빠질 수 없다.

종교계의 집회가 연이어 잡혀있다. 평화의 촛불로 거리행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집회와 시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폭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직접행동을 택해야 하고,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자기 방어를 하려는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의 직접행동도 만들어져야 한다.  비폭력의 시민들이 조용하게 행진하는데 왜 막느냐를 따질 사람들도 나와야 한다. 국가권력이 거준 폴리스라인이라는 통제에 따르는 것은 평화시위 차체가 국가권력에 의해 조정되고 있음에 분노해야 한다.

무조건 촛불이 이긴다가 아니라 촛불의 힘을 공허한 광장의 독백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표출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정하자! 타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전경버스에 불을 붙이려던 사람들이 시민들에 의해 경찰에 넘겨졌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거리시위에서 불법과 합법을 가르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본다.  차라리 당신 행동은 우리와 다르니까 다른 곳에서 하라든가?  아직 시기가 그러니 그런 방법은 자제해 달라든가 했어야 했다.  국가권력이 규정한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더한 불법을 행했다고 경찰에게 넘겨주니...  


개인적으로 난 촛불의 방향을 한 곳으로만 몰지 않으면 촛불이 이긴다고 생각 한다.

아직도 우리는 촛불의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촛불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게 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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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들어와  온 몸이 실신 상태에서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잠깐 잤을까?


그저께 촛불집회에서 참석 후 대국민 토론에 잠깐 듣는 것이 내내 마음이 아렸었는데

긴박한 정국이 밀려있는 일들을 손에 잡히지 않게 한다.


컴퓨터 자판 앞에서 다른 일들을 못하게 가로막으며

한 없이 개인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광화문 상황이 긴박하다는 문자가 날라온다.

누군가에 날라온 문자에 이미 머리 속에서는 "오늘은 단단히 각오하고 나가라는" 주문을 한다.

마스크와 긴 팔, 조끼, 운동화를 챙겨입으면서

만주로 떠나는 독립투사마냥 아내한테 툭 던진다.

"내 오늘 기다리지 말거라 살아서 내일 새벽에 올테니까"


모레 일본을 가는 준비도 거의 안해 놓았는데

갈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살수차를 동원해 엄청나게 뿌려대는 골목길에서 시민들은 경찰버스를 밧줄로 당겨 끌어냈다.

함께 당기고, 물벼락을 맞으며,  언성을 높혔다.

계속되는 살수의 공격에도

날카롭게 구호를 외치며 살수에 대항하는 애띤 여성들이 눈에 띤다.


쏘아라,

우리도 발악하지만 상대도 오늘의 발악을 한다.

감정이 격해지고 목소리의 함성들과 비명들....

미친 정부,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광화문 소나타.


 정부, 대통령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시민에게 봉사하는 경찰의 모습이 아니라

국가가 그들에게 충실한 개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기제장치로서

복무하고 실행하길 강요한다.

국가권력의 충실한 시행자로서 국가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명박정부가 아닌 여타의 정부가 들어와도

똑같은 일은 반복되리라 본다.

불신 명박이 아닌, 불신 국가권력이다.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국가권력은 필요없다.

이 번 소고기 문제를 통해

시민들을 국가권력,

국가가 개인들에게 어떤 존재로 존재해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월드컵때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 번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과 내가 생각하는 국가라는 틀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조국사랑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소고기 문제도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건강권에서

애국적 차원이 기저에 깔려있다.


보수단체의 애국논리와 소고기 문제의 애국은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심신에서는 같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나라를 바로세운다는 대의적 명분을 내세우며 크고 작은 봉기, 혁명, 사건들..

민족적인 애국은 국가를 살찌운다는

가당치않는 생각들은,  또한  그들은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벌인 월드컵 성화봉승 광기를 두려워했다.

중국의 중화국가주의는 잘 살아야겠다는 경제 지상주의의 국가에 대한 애국을 만들고 있으며

일본의 우편향적 보수주의는 국가와 개인이 따로 놀면서 어쩌면 우리와 다른 사고를 가진 국가가

바로 이웃에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주의 민죽주의 특히 애국으로 점철되는 점에서는

동양의 어떤 나라와도 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이 운동권이던 비운동권이던

국가 운운하며, 애국을 이야기하는 단체나 생각과 행동에는  알러지 반응처럼  반응한다.

통일을 내세우는 운동권 단체에게도 그것이 지상명제라 할지라도 마찮가지 반응이다.


누군가 이야기 했다.

탈근대사회에서 계급적 갈등이 흐지부지 해진다고.

계급적 갈등의  존재는 우리 안에서 못 느낄지라도

상대적 양극화로 인한 갈등의 첨화가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은 우리에게 새롭게 이 것을 풀 열쇠를 줄지도 모른다.

또한 그동안 이분법적으로 존재했던 고리들을

이 번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을 역사는 기억하고 만들어 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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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계속되는 촛불시위는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과거의 잠재되있던 야만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과 그에 기생하는 집단들의 야만성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자신의 몸조차 방어할 수 없는 비무장인데도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은 자발성에 기인하여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그와 상응 대는 야만성을 불러오리라 본다.

막상 경찰들의 물대포와 진압과정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입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없던 그들이 적과 아로 바뀌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생전 처음 보는 그들에게 반감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상황이 서로를 그렇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시위대가 청화대로 가자고 외친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또 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과연 이런 식의 거리시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나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대 정권 중에서 어쩌면 가장 골통같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 앞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강력한 대통령과 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 시장이었을 때는 서울시를 하나님 궁전에 바치고 싶다는 종교적 신념을 서슴없이 내 뱁은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청계천복개를 뜯어냈다.
“거 봐라 만들어 놓으니 좋지 않냐  이거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사람 있는 줄 아느냐”식의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고집불통 꼴보수 개발론자이다.
지금 하는 행태로 보아 대운하개발도 밀어 부칠것은 안 봐도 무당 빤스다.

10대들이 지핀 촛불은 대다수의 시민들을 거리의 광장으로 끌어내었다. 
연행자들이 늘어나고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리시위는
아직까지 비폭력의 노선을 견지하는 점에서 이 전의 시위와는 다르다고 생각 한다.
또한 시위 지도부도 없고 배후도 없다. 그렇기에 전략, 전술도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경찰의 진압에도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밤을 새며 진행한다. 

돌아간 사람들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 생중계 TV를 통해 현장을 생동감 있게
공유하며 과거의 고립된 시위가 아닌 함께 하고, 함께 분노한다.

그동안 뒤에서 관망? 지도하기에 역부족이었던 활동가들 사이에서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과 전략과 전술을 이야기 한다. 

권력의 습성과 야만성을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두려운 가운데도 자신의 의사와 직접행동을 자신의 수준에서
동참하며 외치고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어린아이를 휄처어에 태워 온 엄마는 자신만의 직접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난 국가권력의 폭력에 분노의 파토스를 자신 만의 실천을 통한 직접행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그들과 똑같은 방식의 폭력적 대응이 아니라
거리에서 넘치는 활력적 요소로소 야만의 가득한 권력과 한 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과거 거리의 시위를 지도한 운동권 출신은 현재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시민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현재 야당은 국회에서 시민들의 눈치만 보며 지들의 주판알만 굴리고 있다.
이런 놈들은 한나라 놈들과 이름만 달랐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운동권 중에 자신의 정치력을 높이려고 주제넘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한 ‘다함께’ 역시 그렇고
광우병 촛불문화제대책위도 이 판을 주도할 능력도 없다.

오로지 시민들만 거리의 자유를 느끼며
하나의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정당성이 아닌 권력의 야만성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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