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AO/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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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무역을 통해 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WIN-WIN)을 만들기 위해 대안적 운동으로 개인들의 참여/ 동참/ 협력/ 정보의 공유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함.
6무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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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2
    촛불이 왜 이길까?
  2. 2008.06.03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
 

촛불이 왜 이길까?


꺼져가는 촛불의 물결이 천주교 사제단의 미사집회로 다시금 시청광장을 수놓았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60여 일간의 촛불집회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촛불중독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나 역시 여기에 속하다 보다.

집회가 가지않는 날은 아프리카티브를 커놓고 오늘의 상황을 체크하며 분노한다.

어차피 집에 있으나 집회에 참석하나 잠을 못자는 것은 매한가지이기에 마음이라도 편하려고 촛불로 발길을 옮긴다.  개인의 일상의 삶을 바꿔놓은 촛불정국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재미있다. 

시민들은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성을 안다.  그들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하지만 시민들이 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를 국가권력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권력의 폭력성을 경험해 왔고 싸워왔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싸우지 않았는가?  아무리 MB가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의 탄핵사건 역시 이건 아니다는 판단으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는 아닌 것에 대해 어떠한 폭력으로 누른다 해도 납득할 만한 자기 긍정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것 이다. 그렇기에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단체나 조직들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창조적 행동에 뒤질 수밖에 없었고 이끌수도 없다. 물이 없으면 물을 구해오고, 인터넷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자고 제안하면 다음 날 곧바로 들고 나오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시위도구들이 등장하면서 거리의 시위는 즐기며서 권력에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와 권위가 옛날 권위주의 정권 때 만큼 사람들한테 받아들이지 않는 정서가 깔린지는 벌써 오래전에 이기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나 보았던 골통같은 오만이 시민들을 더욱 열받게 만들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 초기 독재타도, 명박퇴진이라는 구호가 10대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한 마디로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껌딱지처럼, 특정 연애인 안티모임에서 행동하듯이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한 마디로 “니가 뭔데”이다. “대통령이면 다냐” 이런 것을 보고 있자면 자연히 신이난다. 촛불중독에 안 빠질 수 없다.

종교계의 집회가 연이어 잡혀있다. 평화의 촛불로 거리행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집회와 시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폭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직접행동을 택해야 하고,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자기 방어를 하려는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의 직접행동도 만들어져야 한다.  비폭력의 시민들이 조용하게 행진하는데 왜 막느냐를 따질 사람들도 나와야 한다. 국가권력이 거준 폴리스라인이라는 통제에 따르는 것은 평화시위 차체가 국가권력에 의해 조정되고 있음에 분노해야 한다.

무조건 촛불이 이긴다가 아니라 촛불의 힘을 공허한 광장의 독백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표출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정하자! 타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전경버스에 불을 붙이려던 사람들이 시민들에 의해 경찰에 넘겨졌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거리시위에서 불법과 합법을 가르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본다.  차라리 당신 행동은 우리와 다르니까 다른 곳에서 하라든가?  아직 시기가 그러니 그런 방법은 자제해 달라든가 했어야 했다.  국가권력이 규정한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더한 불법을 행했다고 경찰에게 넘겨주니...  


개인적으로 난 촛불의 방향을 한 곳으로만 몰지 않으면 촛불이 이긴다고 생각 한다.

아직도 우리는 촛불의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촛불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게 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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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계속되는 촛불시위는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과거의 잠재되있던 야만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과 그에 기생하는 집단들의 야만성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자신의 몸조차 방어할 수 없는 비무장인데도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은 자발성에 기인하여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그와 상응 대는 야만성을 불러오리라 본다.

막상 경찰들의 물대포와 진압과정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입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없던 그들이 적과 아로 바뀌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생전 처음 보는 그들에게 반감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상황이 서로를 그렇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시위대가 청화대로 가자고 외친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또 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과연 이런 식의 거리시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나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대 정권 중에서 어쩌면 가장 골통같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 앞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강력한 대통령과 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 시장이었을 때는 서울시를 하나님 궁전에 바치고 싶다는 종교적 신념을 서슴없이 내 뱁은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청계천복개를 뜯어냈다.
“거 봐라 만들어 놓으니 좋지 않냐  이거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사람 있는 줄 아느냐”식의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고집불통 꼴보수 개발론자이다.
지금 하는 행태로 보아 대운하개발도 밀어 부칠것은 안 봐도 무당 빤스다.

10대들이 지핀 촛불은 대다수의 시민들을 거리의 광장으로 끌어내었다. 
연행자들이 늘어나고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리시위는
아직까지 비폭력의 노선을 견지하는 점에서 이 전의 시위와는 다르다고 생각 한다.
또한 시위 지도부도 없고 배후도 없다. 그렇기에 전략, 전술도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경찰의 진압에도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밤을 새며 진행한다. 

돌아간 사람들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 생중계 TV를 통해 현장을 생동감 있게
공유하며 과거의 고립된 시위가 아닌 함께 하고, 함께 분노한다.

그동안 뒤에서 관망? 지도하기에 역부족이었던 활동가들 사이에서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과 전략과 전술을 이야기 한다. 

권력의 습성과 야만성을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두려운 가운데도 자신의 의사와 직접행동을 자신의 수준에서
동참하며 외치고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어린아이를 휄처어에 태워 온 엄마는 자신만의 직접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난 국가권력의 폭력에 분노의 파토스를 자신 만의 실천을 통한 직접행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그들과 똑같은 방식의 폭력적 대응이 아니라
거리에서 넘치는 활력적 요소로소 야만의 가득한 권력과 한 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과거 거리의 시위를 지도한 운동권 출신은 현재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시민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현재 야당은 국회에서 시민들의 눈치만 보며 지들의 주판알만 굴리고 있다.
이런 놈들은 한나라 놈들과 이름만 달랐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운동권 중에 자신의 정치력을 높이려고 주제넘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한 ‘다함께’ 역시 그렇고
광우병 촛불문화제대책위도 이 판을 주도할 능력도 없다.

오로지 시민들만 거리의 자유를 느끼며
하나의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정당성이 아닌 권력의 야만성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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