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AO/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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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무역을 통해 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WIN-WIN)을 만들기 위해 대안적 운동으로 개인들의 참여/ 동참/ 협력/ 정보의 공유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함.
6무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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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6
    숨겨진 마야문명 코판 유적지 - 온두라스
  2. 2011.05.18
    코스타리카

니카라과에서 다음의 여행 노정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로 향하는 길을 잡게 되었다.

온두라스는 코판 유적지를
꼭 보고 싶어서 바쁘게 레옹에서 국경 도시
치난데가 (Chinandega), 여기서 다시 온두라스 국경 마을 구아사블레(Guasble)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리고는 다시 온두라스 수도인 데구치갈파(Teguchigalpa), 수도보다 훨씬 잘 꾸려진 북쪽의 도시 산페드로 데 술라 (San Pedro de Sula)로 향하였다.

한 나라를 스치며 가로질러 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여행했다고 말 할 수 없지만 그동안 중미를 돌아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마야문명의 흔적을 온두라스에서 찾고 싶었다.


내가 아는 짧은 중남미 역사 속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로 인한 전쟁이 있다. 시발점은 축구가 되어 주었지만 이전부터 누적된 국경선 분쟁이 이로 인해 터져 나온 것이다.


1969
6 15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온두라스-엘살바도르간의 월드컵 중남미 2차 예선전 중 3:0으로 온두라스가 패배하자 자국 팬들의 공격으로 온두라스 선수 3명이 집단구타 당해 사망한다. 여기에다 경기장에 있던 엘살바도르 관중들과 시비가 붙어 대규모 폭력사태로 번지게 되어 많은 온두라스인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같은 시각, 온두라스에서도 엘살바도르인에 대한 사냥이 벌어져 엘살바도르인들이 살해된다. 온두라스 정부는 이후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엘살바도르인에게 추방명령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다. 이에 맞서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정부에 항의하며 자국 교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으나 온두라스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한술 더 떠 엘살바도르인의 이민금지령을 내리자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를 세계 인권위원회에 제소한다.

 

그 뒤를 이은 국교 단절, 월드컵 최종 지역 예선전의 무승부와 함께 몰고 온 7 14일 전쟁 포고, 6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다. 이 날은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으며 경기는 난폭했다. 결과는 22무승부라서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 전반 12분 엘살바도르의 로드리게스가 결승골 을 터뜨렸다.
그동안 각종 반정부 운동 및 사회문제를 안고 있던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의 엘살바도르 정권은 축구로 인한 반 온두라스 정서에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면서 전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온두라스 4개 도시의 폭격과 함께 전쟁을 시작한다. 이 전쟁 역시 미국의 개입으로 19일만에 끝이 난다.


니카라과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두라스의 산악을 지나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데 왜 이리도 차이가 나는지? 그 전해져 오는 느낌이 더 강렬해서 마음이 아프다 

파나마 카리브해에 있는 인디오 집들을 보면 초라하지만 평화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같은 중미 인데도 온두라스 산악지대의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유난히 힘들게 보인다. 워낙 산악지대가 많아서 인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나가는 여행자 역시 힘들어진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코판(Copan)은 마야문명의 조각품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지이다. 이 작은 도시를 보기 위해 온두라스의 남에서 북으로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페드로 술라에서 코판의 작은 도시에 내리면 우선 반기는 것은 대중 교통 수단으로 한 몫 하고있는 툭툭이들이다.  이것 저것 두리번 거리며 찾고 살펴봐야 할 것도 많지만 우선 잠자리부터 챙긴다.


숙박은 여행자들의 필수 도서인 론리북을 빌려 적어둔 만사나 호스탈(Mansana Hostal)로 정했다.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숙박비용이 저렴하다 (5 달러)


잠시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 날 새벽부터 서둘러 코판 유적지로 향했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므로 조금만 서두르면 한 낮의 찌는 태양을 피할 수 있다.  생각대로 사람이 없다.


붉고 황금색으로 장식된 커다란 잉꼬들이 올라!(안녕) 를 목청껏 외치며 정성껏 여행자들을 맞아 주는가 하면 어떤 녀석들은 방문객들을 쌩~무시하며 여기 저기 날아다니고, 또 어떤 놈은 땅을 걸어 다니며 먹는 게 남는 것인 냥  이것 저것 주어 먹기에 열심이다.

 

과테말라에서 여행 온 한 가족을 만났다. 엄마, 아빠, 딸이 코판을 보기 위해 이 유적지에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 라는 분은 역사와 유적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것 같다. 방문객이 뜸한 한적한 유적에서  그들과 난 코판 유적지를 세세하게 보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와는 비록 언어가 안 통하지만 전문가 수준 이상으로 중앙 아메리카의 문명에 대해 비교 설명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돌 조각을 보며 생김새가 아시아의 문양과 비슷하다는 말들과 조각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짧은 말 뿐이었다.

 

조금씩 마야문명에 대해 빠져 들고 있을 때 그는 과테말라와 멕시코에 가면 이곳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저 조금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마야문명은 아즈텍 문명 발생 전, 중앙 아메리카 전역에서 고도로 발달된 신비스러운 문명 정도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마야 문명의 분포에 대해 간추리면 멕시코의 고산지대인 치아파스지역과 정글지대인 다빠스코 지역,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벨리즈의 광대한 지역에서 볼 수 있고, 3000 년 전부터 오늘 날까지 이어지는 중미 최고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후에 북쪽에서 내려온 툴텍크 문명에 흡수, 통합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왕이나 그의 가족들의 무덤인데 반해 중앙 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코판 유적지의 돌 조각 하나 하나에 아로 새겨진 섬세한 문양들과 석조상들은 마야문명의 찬란함을 엿 볼 수 있어 이 곳을 찾아온 여행자를 과거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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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미는 남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다르게 느껴질까?

중미와 남미, 북미를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북미가 캐나다, 미국, 영어권의 (캐나다 퀘백지역이 프랑스어 사용이 있지만) 선진국이지만, 여타의 중미, 남미 나라들 대부분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독립한 개발도상국가들이다. 스페인풍의 제국주의 잔흔들이 여기저기 넘쳐나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브라질과 몇 몇을 제외한 전 지역이 스페인어로 소통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북미와 중미, 남미는 크게 보면 같은 아메리카 대륙이면서도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것의 제일 큰 이유가 식민지 경험의 역사와 아닌 것과의 차이가 아닐까? 그 만큼 중미와 남미는 일찍부터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역사와 함께 했다. 17-18세기 해상 왕국 스페인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모든 대륙을 통째로 먹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크게 그리고 새롭게 재편되는 독립국가까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후손들에게 의해 새롭게 라틴 아메리카로 탈바꿈 되었으며, 또한 새롭게 형성된 그들의 현대사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안 마당으로 전략되었으며 그 안 마당의 곡간을지키기 위해 개 망나니들을 키우고 비호하며 이익을 챙겼다. 그렇기에 커다란 그 곡간을 둘러싼투쟁들이 중미와 남미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다. 독립 이후에도 지독한 독재정권과의 치열한 민중 투쟁의 역사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들도 있지만 아직도 부패한 정권과의 투쟁은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곳이 중미이다.


중미 국가들 현대사를 보면 어느 나라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슬픈 민중들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있다. 
 

        

< 이것이 파나마다 >


파나마 정말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중학교 지리 시간 때부터 익힌 파나마, 수에즈 운하는 전자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중해와 홍해를 이어 아프리카를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지름 항로인 것이다.


두 운하 역시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지닌 이름이다강대국의 논리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는 역사적 산물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절대로 그들에게는 빼앗길 수 없는 자본거점의 산실인 것이다.


    콜롬비아의 한 주였던 것을 강대국 미국의 힘에 의해 분할 독립되어 탄생한 파나마는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히 미치는 곳 이였기에 다국적 기업들이 손쉽게 뿌리를 내리며 자신들의 이익을 내는 물류 허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 중심에 파마나 운하가 있다.    거대 자본들이 만들어 놓은 마천루 도시의 빌딩 앞에서 남미 여타 도시와 다른 이질적 문화를 만나게 된다.


잘 가꿔진 도시를 따라서 가다 보면 이 도시에 힘에 놀라지만 그 빌딩들을 주위의 삶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하루를 악착같이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이렇게 달라도 다를 수가 있나 할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느끼게 하는 

이 도시를 슬프게 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선입견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교하자면 브라질 리오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리오의 빈민가는 못살지만 그래도 생동감이 묻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파나마의 빈민가는 건물에서 풍겨 나오는 슬픔이 겉에서부터 느껴진다.

나의 머리 속에 맴도는 이런 느낌이 파나마를 마지막까지 떠나면서도 내내 떨구어내지 못하였다.

이 도시를 오기까지 산블라스라는 오지의 섬들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문명과 동떨어진 파나마를 보다가 갑자기 물질문명이 넘쳐나는 정 반대의 도시를 보아서 일까 

    또한 파나마에서 코스타리카를 거쳐 니카라과로 육로 이동하면서 받은 느낌은 같은 대륙 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라는 것이다. 파나마가 빈부의 격차가 크고, 다국적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계획적인 국가라면 니카라과는 가난한 사람들이 뭔가를 해보려고 애쓰는 민중들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나라다. 그리고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스위스답게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전체 GNP 중 관광수입이 3위이다.   관광 인프라를 위해 잘 가꾸어진 도로망, 관광투어 상품들, 호텔들…… 파나마의 오지 섬에 있다 와서 그런지,   코스타리카에서 받은 인상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곳 받았다.

갈 만한 곳은 전부 관광 상품화된, 너무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실제로 여행자가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은 곳이 또한 코스타리카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스타리카는 1949년 이후 군대가 폐지된 나라라서 그런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언제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였는지 모른다, 또한 국토의 거의 절반이 원시림이면서 국립공원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도시처럼 잘 가꿔진 자연 공원이 아니라 원초적인 상태의 모습을 보호하여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곧 이 나라 관광정책인 것이다

      그것을 보기 위해 유럽과 북미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에 탄성을 지어낸다.


또한 다른 중미의 나라에 비해 이 나라는 백인이 월등하게 많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물가는 유럽 수준 정도로 다른 중미 나라에 비해 높아서 배낭여행객들이 오래 머물고 싶어도 빨리 떠나게 만드는 곳이다.

 


 수도 산호세를 여행하고 나서 니카라과로 가기 위해 중간에 위치한 아레날 화산과 리베리아 국경마을을 선택하여 바쁘게 일정을 재촉하였다. 여타 중미의 국가들도 비슷하지만 코스타리카는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양 옆으로 끼고 있으며 가운데로 북미의 로키산맥과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연결하는 산지와 고원지대로 많은 화산들을 가지고 있다. 양쪽 지역이 더운 아열대 기후라면 가운데는 봄/가을 날씨라고 느껴지는 곳이지만 그래도 한낮에는 덥다.

아레날 화산을 원뿔모양으로 두고 다양한 투어 상품들이 있는데, 난 오전에는 아레날 산을 오르는 산행과 저녁에는 열대지방에서 즐기는 노천 온천을 선택했다. 아레날 산은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가이더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관광회사를 통해 신청한 단 2명을 위해 배치된 티카 버스와 한 명의 전문 안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일들을 너무나 친절하고 완벽하게 처리한다
 
 나무 하나 하나 그 숲에 살고 있는 새들과 동물들의 이름까지 그리고 망원경으로 살펴 보라고까지 권한다. 마지막 안개 낀 화산 산의 절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일정을 끝내고 늦은 시간 온천을 하러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붐비지 않는다.

  온천의 규모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 정말 크고 다양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온천 탕에서 맘껏 즐기면 된다.

  

 숙박은 백버거 인이라는 호스탈의 도미에서 했는데 지금까지 묵었던 호스탈보다는 럭셔리하면서도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해서 묵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산호세에서 머물렀던 갈릴레오 호스탈이 배낭여행객들에게는 부담 없이 요리도 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 곳은 쉬기 편하게 모든 것들이 세심하게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관광지이다 보니 소소한 모든 것들 조차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레날에서 코스타리카 북쪽 리베리아로 가는 길은 아레날 호수를 끼고 장시간 가는 환상의 풍광을 느끼게 하는 차도이다. 호수와 또 다른 화산 산들 그리고 작은 마을들까지 거대한 풍경화를 펼쳐 놓은 것 같아 잠시 스위스나 북유럽의 산천을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여행객의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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